일반 노동조합은 언제 강하게 싸워야 하고 이길수 있을까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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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2000년 5월, 10월 두차례의 파업투쟁을 김대중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속에 성공시킨 그해 12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반대 파업이 6박 7일간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시중 금융기관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직권중재 대상이라 합법 파업은 불가능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바로 강제 해산하지 않고 6일간 자진 해산을 권유(?종용)했었고 야당(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불법 파업도 용인하는 좌파(빨갱이)정부라고 연일 공격을 했었습니다.
2000년 12월은 김대중 정부 집권 2년차로서 IMF환란사태로 떨어졌던 국가 신인도(무디스, S&P, 피치)가 올라가 환란을 벗어나는 시점이었으나, 만일 국민/주택은행 파업사태가 해를 넘겨 국제자금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또는 은행노조의 압박에 굴복하여 IMF와 약속했던 은행합병이 무산될 경우 또다시 국가 신인도가 떨어져 환란이 연장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은행 영업일 3일을 앞둔 12월 27일 경찰 헬기까지 동원하여 강제해산 했고, 주도자는 구속되고, 구조조정을 당하는 등 상처뿐인 싸움으로 끝이 났었습니다.
당시 양대 은행노조의 파업을 지원했던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더 이상 이 정권에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고 선언하고 DJ퇴진, 김대중정권 타도를 위하여 2001년 민주노총 총파업을 조직하게 됩니다.
사실 김영삼 정부까지 법적으로는 불법단체였던 민주노총을 합법화 시켜준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었고, IMF환란 극복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만들면서 한국노총과 함께 민주노총을 참여시켰으나, 민주노총은 IMF의 일방적인 요구조건을 해명 받는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1년 만에 탈퇴했고, 은행합병반대 파업사태 이후 김대중 정권 타도를 부르짖는 총파업을 조직했으니 김대중정부와 완전히 척을 지는 결정을 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에게 2차례나 도움을 받았던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2001년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조정전치주의 위반에 따른 불법파업 논란을 알면서도, 심지어 임금협상에서 파업돌입 직전 임금동결을 선언하고서도 외국인 기장 인원 축소/제한을 명분으로 6월 민주노총 총파업에 동참하여 선봉에 서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선봉에 서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중동 등 언론은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의 파업만 주로 보도하였기에 선봉으로 타겟팅 당한 것이었지요.
김대중정부와 집권 민주당의 우리 노동조합에 대한 배신감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00년 10월 파업에서는 대표이사를 청와대로 불러 조속한 타결을 종용(?)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6월 파업에서는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검찰에게 대기업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에는 법적용을 엄격히 하라는 공개지시를 했었지요.
즉, 2000년 10월 22일 파업에서는 정오를 좀 지나자 회사에서 교섭을 재개하자고 연락이 왔었고 당일 타결되었지만, 2001년 6월 13일 파업에서는 12시 좀 지나자 사측의 교섭재개 요구는 없이 검찰에서 집행부 12인과 당일 첫비행 스캐쥴 기장/부기장 2인 등 총 14인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하고 검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결국 3일만에 당시 사장(심이택) 개인 명의로 외국인 기장 채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이행서’ 한 장 받고 파업을 풀 수밖에 없었고, 집행부 4인 구속 포함 8인이 해고를 당했고 십수명의 집행부가 기소되었지만, 약속이행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했었지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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